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보스니아 전쟁 (문단 편집) === [[1993년]] 아테네 합의(밴스-오웬 안) 시도 === 보스니아 전쟁은 딱 한 번 합의가 돼서 멈출 뻔했다. 이게 바로 1993년 아테네 합의, 즉 밴스-오웬 안이다. [[파일:1024px-Vance-Owen_Peace_Plan.png]] * [[1993년]] [[5월]] [[아테네]]에서 제안하였고, 구 [[유고슬라비아]] 구성국들이 모여서 합의했던 밴스-오웬 안(Vance-Owen Plan)이다. 비교 대상인 노란색은 [[1995년]] 데이턴 조약에 따른 현재의 경계([[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]], 스릅스카 공화국, 브르치코 행정구)이다. 빨간색은 세르비아계, 초록색은 보슈냐크계, 파란색은 크로아티아계이며 노란색은 공동 거주구역이다. 밴스-오웬 안은 [[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]]를 10개 주로 나누고, 해당 주의 주 민족을 설정하되 지역의 주 민족이 아닌 다른 민족들이 '''자기 집으로 다시 들어와 살 수 있도록 하였다'''.[* [[1995년]] 체결된 [[데이턴 조약]]의 경우 스릅스카 공화국, [[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]] 등 구성국에 사는 사람은 '''다른 쪽 구성국으로 넘어가지 못한다'''. 이 보스니아 전쟁 시기를 견디고 살아남은 소수민족만이 계속 거주할 권리를 갖는 상태이다.] 또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[[구성국]]을 두지 않고, 주보다 권한이 낮은 [[광역자치단체]]만 설치하여 중앙정부의 통제력을 강화하는 단일국가체제를 구상하였다. 민족 갈등을 억제하기 위해 20여개 국가로 구성된 [[UN]] 평화유지군을 '''3만 명 파병'''하기로 결정했다. [[슬로보단 밀로셰비치]]는 보스니아 전쟁 발발 초기였던 1992년과 1993년 초까지는 [[스릅스카 공화국]]을 지원했으나 [[1993년]] [[5월]] [[그리스]] [[아테네]]에서 이뤄진 아테네 합의[* 보스니아 전쟁 이전의 상태로 돌아간 후 분리독립 국민투표를 인정하는 것. 의외라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밀로셰비치는 [[1992년]] [[3월 10일]] 보스니아의 독립을 인정하는 태도를 보였던 적이 있다. 그래서 밀로셰비치는 카라지치와 믈라디치에 "이 정도만 해라. 우리의 주적은 [[크로아티아]]다."라는 메세지를 보낸 것이다.]를 적극 주장하여 [[스릅스카 공화국]]의 [[라도반 카라지치]], [[라트코 믈라디치]]와 엄청난 마찰을 빚기도 했다. [[https://www.youtube.com/watch?v=zCF0jLDQmpY|관련 영상]]. 해당 영상을 보면 밀로셰비치는 밴스-오웬 안, 아테네 합의가 '''아주 좋은 방안'''이라며 카라지치를 압박하였고, 이후 [[스릅스카 공화국]] 의회에 참석하여 해당 합의를 비준시키고 보스니아 전쟁을 그만 중단하려고 했다. 그러나 [[라도반 카라지치]]는 한 뼘이라도 늘리려는 영토에 집착했고 [[라트코 믈라디치]]는 의회에 갑자기 들이닥쳐 전황 지도를 보여주며 '''아테네 합의를 파기해 버린다'''. 밀로셰비치는 보슈냐크인의 독립 자체는 용인할 수 있어서 아테네 합의를 시도했으나 [[크로아티아]]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았기에[* [[슬로보단 밀로셰비치]]는 [[주적]]을 [[프라뇨 투지만]] 크로아티아 대통령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.] 크로아티아와의 전쟁에 집중하는 대신 보스니아에서는 [[1991년]] 유고슬라비아 전쟁 발발 초기 전쟁을 벌였다가 분리독립을 인정했던 [[슬로베니아]]와 같이 보스니아의 독립을 인정하고 개입을 철회하려고 했다. 이 때문에 밀로셰비치는 보스니아 전쟁은 명분이 없다며 [[크로아티아]]와의 전쟁에 집중할 것을 촉구했으나 카라지치와 믈라디치는 무슬림 제거가 먼저이고 [[영토]] 문제에 대해서 양보할 수 없다며 아테네 합의를 파기해버린다. 그러자 밀로셰비치는 [[1993년]] 말 스릅스카 공화국에 대한 지원을 최소화하기로 결정하고 세르비아 측의 군사지원이 사실상 중단됐다. [[파일:3ca6866cc7ec8067948f43878bca0dd4.jpg]] * 보스니아 전쟁이 한창이던 [[1994년]] [[4월 22일]] [[베오그라드]]를 방문한 [[라도반 카라지치]] [[스릅스카 공화국]] 대통령과 [[세르비아 공화국]] 대통령 [[슬로보단 밀로셰비치]]가 함께 찍은 사진. [[https://aktifhaber.com/gundem/erdogana-lahey-yolu-sonu-sirp-kasap-milosevic-gibi-olacak-h151167.html|사진 출처]] [[https://www.slobodnaevropa.org/a/1187821.html|날짜 출처]] 사실 이 회담에서 카라지치는 밀로셰비치한테 '''전면적인 군사적 지원'''을 요구했으나 밀로셰비치는 스릅스카 공화국에 대해 "[[1993년]] 아테네 합의(밴스-오웬 안)을 걷어찬 대가로" '''군사적 지원을 거절'''한 장면이다. 경제적 지원에는 합의했지만 밀로셰비치가 스릅스카에 대한 군사적 지원은 거부하였기 때문에 카라지치의 표정이 매우 안 좋다. 이렇게 밀로셰비치가 스릅스카 공화국을 [[손절]]한 이후 스릅스카 공화국은 보스니아 전쟁에서 수비와 점령지 내에서의 보슈냐크인 학살에만 집중하다가 [[북대서양 조약 기구|나토]]군의 군사개입으로 [[폭격]]을 맞고 사실상 전쟁에서 패배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